2010. 11. 22. 16:52

블랙사바스 연대기 4 - Sabbath Bloody Sabbath 와 Sabotage (1973–1976)

Volume 4 월드투어 이후, 블랙사바스는 다음 앨범 작업을 위해 LA로 돌아왔다. Volume 4에 만족했기 때문에, 밴드는 녹음 환경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LA의 Record Plant에서 다시 작업을 하고자 했다. 당시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로 인해, Record Plant에서 지난 앨범의 녹음에 사용됐던 방이 거대한 신서싸이져로 교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밴드는 놀라고 말았다. 밴드는 Bel Air(LA 지역의 지명)에 집을 빌려서, 1973년 여름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으나 약물 문제와 피로등의 영향으로 인해, 그들은 단 한곡도 완성을 시키지 못했다. 아이오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Volume 4를 작업할 때와는 달리 아이디어가 나오질 않았어요. 모두 내가 뭔가를 내놓기를 바라며 앉아서 기다릴 뿐이었죠.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아무 것도 제시를 못했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런 결과없이 LA에서 한달을 보낸 뒤, 밴드는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Clearwell 성을 빌린다. "우리는 지하감옥에서 작업을 했어요. 그곳은 정말 오싹했지만 어떤 분위기가 있었고, 여러 가지를 상기시겼죠. 그러자 곡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어요" 지하감옥에서 작업하는 동안, 아이오미는 새로운 소재를 음색에 담아 "Sabbath Bloody Sabbath"의 메인 리프를 만든다. 런던의 모건 스튜디오에서 마이크 부처와 녹음을 진행하고, Volume 4에서 시도했던, 신서싸이져와 현악기를 포함하는 새로운 노래와 복잡한 곡구성과 같은 형식적인 변화가 완성되었다. 그룹 YES의 키보디스트인 릭웨이크먼을 세션으로 참가해서 "Sabbra Cadabra"에서 연주를 했다.



1973년 11월, 블랙사바스는 비평가들의 찬사속에 Sabbath Bloody Sabbath를 발표한다. 그들의 경력에서 최초로, 밴드는 롤링스톤즈의 고든 프리쳐가 이 앨범을 "엄청나게 사로잡는 물건", "완벽한 성공작외의 표현이 불가능한 앨범"으로 부른 것과 함께, 주류 언론으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AllMusics의 Eduardo Rivadavia와 같은 오늘날의 평론가들은 "어떤 헤비메탈 콜렉션에도 필수적인, 대작"이며 "기교와 원숙함에서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5연속 플래티넘 앨범의 판매고를 올리고, 영국에서 4위와 미국에서 11위의 차트 순위를 기록한다.

1974년 1월에 시작한 월드 투어는 1974년 4월 6일,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에서 열린 캘리포니아 잼 페스티발에서 그 정점에 도달했다. 20만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블랙사바스는 70년의 록과 팝의 거물인 Deep Purple, Eagles, Emerson, Lake & Palmer, Rare Earth, Seals & Crofts, Black Oak Arkansas, Earth, Wind & Fire와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공연의 일부가 ABC를 통해 TV 중계되어, 더 많은 미국 청중에게 밴드가 알려졌다. 1974년에 밴드는 악명높은 영국인 매니져 돈 앨든과 계약을 맺고, 소속사를 옮긴다. 이 이적은 이전 소속사와 계약상의 분쟁의 원인이 되어, 미국 공연 중 오지는 2년간의 소송의 시발점이 되는 소환장을 받게 된다.



블랙사바스는 1975년 2월, Sabbath Bloody Sabbath와는 완전히 다른 사운드를 단호하게 목표로 삼아 6번째 앨범 작업을 영국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점점 더 테크니컬 해지고(음악적 기계장치에 의존하고), 오케스트라와 우리가 원치않는 모든 것들을 쓰는 것을 계속하거나 반복할 수 없었어요.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았고, 우리는 록 앨범을 만들기를 원했죠. 사실 Sabbath Bloody Sabbath는 록앨범은 아니었으니까" 블랙사바스와 마이크 부처가 프로듀서한 Sabotage는 1975년 7월에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다시금 처음부터 롤링스톤즈의 "Sabotage는 Paranoid 이래 최고의 앨범일뿐만 아니라, 그들의 최곡의 작품이 될 것이다"라는 평과 함께 평론가들의 우호적인 평을 받았지만, AllMusic과 같은 오늘날의 평론가들은 "Paranoid와 Volume 4와 같은 앨범을 만들었던 특별한 마법과 같은 화학작용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라고 평한다. Sabotage는 미국과 영국에서 탑 20위에 도달했으나, 미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하지 못하고 골드만 기록한 첫번째 앨범이 된다. 이 앨범의 유일한 싱글인 "Am I Going Insane (Radio)"가 차트 진입에 실패했지만, Sabotage에는 "Hole in the Sky"와 "Symptom of the Universe"와 같은 팬들이 아끼는 곡이 수록되어 있다. KISS를 오프닝 밴드로 Sabotage 앨범을 위한 투어를 시작했으나, 오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등근육 파열상을 입어 1975년 11월 투어를 조기 중단한다. 1975년 12월, 밴드의 레코딩 회사는 밴드의 의사와 관계없이 히트곡 앨범인 "We Sold Our Soul for Rock 'n' Roll"을 발표했고, 이 앨범은 1976년내내 차트에 있었고, 마침내 미국에서 2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Black Sabbath - Sabbath Bloody Sabbath

Black Sabbath - Sabbra Cadabra

Black Sabbath - Am I Going Insane (Radio)

Black Sabbath - Hole in the Sky

Black Sabbath - Symptom of the Universe